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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는 포도당만 사용할까? 저혈당 때 케톤체를 사용하는 원리

    뇌는 포도당만 사용할까? 저혈당 때 케톤체를 사용하는 원리

    뇌 케톤체 사용 원리를 알아보다가 제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해외 연구를 접했습니다.

    저혈당 상태에서 뇌가 케톤체를 보조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동안 막연히 “뇌는 포도당만 사용한다”고 알고 있던 저에게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뇌와 케톤체의 관계, 그리고 포도당이 부족할 때 우리 뇌가 에너지를 얻는 원리를 직접 찾아봤습니다.

    다만 이 글은 MCT 오일이나 특정 식단을 권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연구가 실제로 확인한 것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을 구분해 살펴보겠습니다.

    바쁜 분들을 위한 3줄 요약

    • 뇌는 평상시 포도당을 주요 연료로 사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케톤체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2026년 연구에서는 반복적인 저혈당을 경험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의 뇌에서 케톤체가 보조 에너지로 사용될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 이 결과는 일반인이 MCT 오일을 먹으면 기억력이나 지능이 좋아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뇌는 정말 포도당만 사용할까?

    뇌는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기관입니다.

    평상시에는 혈액을 통해 공급된 포도당을 주요 연료로 사용합니다. 포도당은 혈액-뇌 장벽에 있는 포도당 수송체를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뇌세포는 이를 에너지 생산에 활용합니다.

    하지만 “뇌는 포도당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뇌세포는 포도당 공급이 줄고 케톤체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케톤체를 보조 연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포도당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 갑자기 연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포도당과 케톤체의 공급 상태에 따라 두 연료의 사용 비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포도당과 과당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다르게 처리되는지 궁금하다면 이전에 정리한 포도당과 과당의 차이도 함께 살펴보세요.

    케톤체는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간에서 생성된 케톤체가 혈액을 통해 뇌로 이동해 보조 연료로 사용되는 과정
    간에서 생성된 케톤체가 혈액을 통해 뇌로 이동해 보조 연료로 사용되는 과정

    공복 시간이 길어지거나 탄수화물 공급이 크게 줄면 인슐린 수치가 낮아지고 지방조직의 지방 분해가 증가합니다.

    이렇게 분해된 지방산 일부는 간으로 이동해 케톤체로 만들어집니다. 대표적인 케톤체에는 베타하이드록시부티레이트(BHB), 아세토아세트산, 아세톤이 있습니다.

    BHB와 아세토아세트산은 여러 조직에서 에너지원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아세톤은 아세토아세트산이 자연스럽게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기며 주로 호흡을 통해 배출됩니다.

    간에서 생성된 케톤체는 혈액을 따라 이동하고 뇌에도 도달합니다. 뇌세포는 케톤체를 받아들여 미토콘드리아에서 ATP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MCT1과 MCT2라는 수송체가 관여합니다.

    여기서 MCT는 MCT 오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노카복실산 수송체(monocarboxylate transporter)의 약자로, 케톤체 등의 이동을 돕는 단백질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MCT 오일과는 별개의 개념입니다.

    케톤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세포도 있습니다

    케톤체가 모든 세포에서 포도당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적혈구에는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없습니다. 따라서 적혈구는 케톤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고 포도당에 의존합니다.

    이 때문에 공복이 길어지고 케톤체 농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우리 몸은 일정량의 포도당을 계속 확보해야 합니다.

    간은 젖산이나 글리세롤, 일부 아미노산 등을 이용해 포도당을 새로 만드는 당신생 과정을 가동합니다. 장기간 단식에서는 케톤체가 뇌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담당할 수 있지만, 포도당이 완전히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2026년 연구에서는 무엇을 확인했을까?

    2026년 제1형 당뇨병 연구의 BHB 뇌 대사 측정과 MCT 식이 작업기억 비교를 구분한 이미지
    2026년 제1형 당뇨병 연구의 BHB 뇌 대사 측정과 MCT 식이 작업기억 비교를 구분한 이미지

    이번에 살펴본 연구는 Domenico Tricò 등의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입니다.

    논문 제목은 ‘Ketone Bodies Derived From Medium-Chain Triglycerides Support Brain Metabolism and Function Under Hypoglycemia in Type 1 Diabetes Mellitus’이며, 2026년 미국당뇨병학회 학술지인 Diabetes에 실렸습니다.

    이 논문에는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연구가 담겨 있어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연구: 뇌가 BHB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

    첫 번째는 제1형 당뇨병 환자 16명과 건강한 대조군 16명이 참여한 기계론적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인슐린을 사용해 혈당을 일정하게 낮추는 저혈당 클램프를 시행하고, 외부에서 주입한 BHB가 뇌 대사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자기공명분광법을 이용해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서 BHB가 뇌 대사에 기여하는 정도가 건강한 대조군보다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반복적인 저혈당을 경험하는 사람의 뇌가 포도당 부족에 적응하면서 케톤체를 활용하는 능력을 높였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연구: MCT 식이와 작업기억 비교

    두 번째는 반복적인 저혈당을 경험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식이 중재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MCT가 포함된 식이와 열량이 같은 일반 식이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MCT 식이 조건에서 저혈당 상태의 작업기억 수행과 특정 뇌 영역의 활성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저혈당에 대응해 혈당을 높이는 반대조절 호르몬 반응 자체가 개선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결과를 “MCT가 기억력을 높였다”고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저혈당 때문에 작업기억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케톤체가 뇌의 보조 연료로 사용되며 기능 저하를 일부 방어했을 가능성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일반인이 MCT 오일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연구만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연구 대상은 건강한 일반인이 아니라 반복적인 저혈당을 경험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였습니다. 연구 규모도 크지 않았으며, 인슐린을 이용해 혈당을 일정하게 낮춘 특수한 실험 환경에서 진행됐습니다.

    평상시의 기억력이나 지능 향상을 조사한 연구가 아니고 치매 예방 효과를 확인한 것도 아닙니다. 장기적인 뇌 건강 효과 역시 이번 연구로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장은 이번 연구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 뇌는 포도당보다 케톤체를 먼저 사용한다.
    • 케톤체가 포도당보다 뇌에 더 좋은 연료다.
    • MCT 오일을 먹으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좋아진다.
    • MCT 오일이 치매를 예방한다.

    이번 연구는 특수한 저혈당 상황에서 케톤체가 뇌의 보조 연료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MCT 오일을 오래 먹지 못했던 이유

    저 역시 예전에 MCT 오일을 직접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설사가 심해 오래 복용하지 못했습니다.

    MCT는 일반적인 장쇄지방보다 비교적 빠르게 흡수되어 간에서 대사되는 비중이 높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케톤체 생성을 비교적 빠르게 높일 수 있지만, 일부 사람에게는 복통이나 설사, 메스꺼움 같은 위장관 불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물론 소화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저와 같은 불편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몸이 불편한데도 억지로 참으면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에서 시행한 MCT 식이 중재는 연구 목적으로 정해진 조건에 따라 진행됐기 때문에 시중 제품을 개인이 임의로 섭취하는 것과 같은 조건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저혈당이 왔을 때 MCT 오일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이번 연구는 MCT 오일을 저혈당 응급처치에 사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혈당이 70mg/dL 미만이면 저혈당으로 봅니다. 의식이 있고 정상적으로 삼킬 수 있는 상태라면 포도당 정제나 일반 주스처럼 빠르게 흡수되는 탄수화물 약 15g을 섭취하고, 15분 후 혈당을 다시 확인하는 ’15-15 원칙’이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혈당이 여전히 낮다면 다시 빠르게 흡수되는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제품별 섭취량과 개인의 대처 방법은 영양성분표 및 담당 의료진의 치료 지침을 우선해야 합니다.

    지방이 많은 초콜릿은 당의 흡수 속도를 늦출 수 있어 빠른 교정이 필요한 저혈당의 첫 번째 대처 식품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MCT 오일 역시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포도당 공급원이 아니므로 저혈당 응급처치 식품이 될 수 없습니다.

    의식이 없거나 정상적으로 삼킬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음식이나 음료를 입으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처방받은 글루카곤이 있고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사용하고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합니다.

    영양성 케토시스와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다릅니다

    ‘케톤’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같은 상태는 아닙니다.

    영양성 케토시스

    공복 시간이 길어지거나 탄수화물 섭취가 줄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영양성 케토시스는 케톤체가 비교적 조절된 범위에서 증가하는 생리적 반응입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심각한 인슐린 부족으로 고혈당과 케톤 증가가 함께 나타나고 혈액이 산성화되는 응급질환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발생 원인과 위험도는 전혀 다릅니다.

    특히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케톤을 무조건 좋은 에너지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혈당이 높으면서 케톤이 검출되거나 구토, 복통, 심한 갈증, 빠른 호흡, 의식 변화 등이 나타난다면 즉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뇌와 케톤체 연구에서 기억해야 할 점

    뇌는 평상시 포도당을 주요 연료로 사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케톤체를 보조 연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번 2026년 연구는 반복적인 저혈당을 경험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 케톤체가 뇌 대사와 기능을 지원할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기억력 향상이나 치매 예방을 입증한 연구는 아닙니다.

    따라서 이번 결과만 보고 MCT 오일을 무리해서 챙겨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저혈당 상황에서는 MCT 오일이 아니라 빠르게 흡수되는 탄수화물로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결국 우리 몸은 하나의 연료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연료의 비중을 조절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합니다. 케톤체를 이해하는 일은 특정 제품의 효능을 기대하는 것보다, 우리 몸의 정교한 에너지 조절 능력을 이해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MCT 오일을 먹으면 기억력이나 지능이 좋아지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연구만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연구 대상은 건강한 일반인이 아니라 반복적인 저혈당을 경험하는 제1형 당뇨병 환자였습니다. 연구 규모도 크지 않았으며, 인슐린을 이용해 혈당을 일정하게 낮춘 특수한 실험 환경에서 진행됐습니다.

    저혈당이 왔을 때 MCT 오일을 먹어도 되나요?

    이번 연구는 MCT 오일을 저혈당 응급처치에 사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방이 많은 초콜릿은 당의 흡수 속도를 늦출 수 있어 빠른 교정이 필요한 저혈당의 첫 번째 대처 식품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MCT 오일 역시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포도당 공급원이 아니므로 저혈당 응급처치 식품이 될 수 없습니다.

    영양성 케토시스와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같은 건가요?

    ‘케톤’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같은 상태는 아닙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발생 원인과 위험도는 전혀 다릅니다.

    연구에서 말하는 MCT는 MCT 오일을 뜻하나요?

    여기서 MCT는 MCT 오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노카복실산 수송체(monocarboxylate transporter)의 약자로, 케톤체 등의 이동을 돕는 단백질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MCT 오일과는 별개의 개념입니다.

    참고 자료

    번호 출처 링크
    1 Tricò D, et al. Ketone Bodies Derived From Medium-Chain Triglycerides Support Brain Metabolism and Function Under Hypoglycemia in Type 1 Diabetes Mellitus. Diabetes. 2026;75(9). https://doi.org/10.2337/db26-0293
    2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 Low Blood Glucose (Hypoglycemia). https://diabetes.org/living-with-diabetes/hypoglycemia-low-blood-glucose
    3 National Institute of Diabetes and Digestive and Kidney Diseases. Low Blood Glucose (Hypoglycemia). https://www.niddk.nih.gov/health-information/diabetes/overview/preventing-problems/low-blood-glucose-hypoglycemia
  • ER-100 역노화 임상, 시신경 세포를 정말 젊게 되돌릴 수 있을까?

    ER-100 역노화 임상, 시신경 세포를 정말 젊게 되돌릴 수 있을까?

    “노화한 세포를 젊게 되돌린다고? 그래서 얼마인데?”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런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회춘 주사나, 피부와 몸을 젊게 만들어준다는 새로운 항노화 시술이 나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ER-100은 얼굴이나 전신에 맞는 회춘 주사가 아닙니다. 줄기세포를 몸에 넣는 치료도 아닙니다. 손상된 시신경 세포에 특정 유전정보를 전달해 세포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적 유전자치료제입니다.

    2026년에는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의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시대가 열린 것일까요?

    기대할 부분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하나씩 구분해보겠습니다.

    핵심부터 보면

    • 무엇인가: OSK라고 불리는 세 가지 전사인자를 눈의 세포에 전달하는 유전자치료 후보물질입니다.
    • 치료 대상: 개방각녹내장과 비동맥염성 앞허혈시신경병증(NAION) 환자입니다.
    • 현재 단계: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 1상입니다.
    • 사람에게 확인된 효과: 아직 시력 회복 효과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가: 일반 병원에서 돈을 내고 받을 수 있는 치료가 아닙니다.
    • 가장 중요한 사실: FDA가 임상시험 진행을 허용했다는 것과 치료제 판매를 승인했다는 것은 다릅니다.

    ER-100은 줄기세포 주사가 아니다

    ER-100은 미국 생명공학기업 Life Biosciences가 개발 중인 유전자치료 후보물질입니다.

    줄기세포 치료와 유전자치료는 접근 방식부터 다릅니다.

    줄기세포 치료는 몸 밖에서 준비하거나 배양한 세포를 몸에 넣어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기대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ER-100은 새로운 세포를 넣지 않습니다. 이미 눈 안에 존재하는 망막신경절세포에 특정 유전정보를 전달해 기능 회복을 유도하려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는 AAV2라는 전달체가 사용됩니다. AAV2는 아데노연관바이러스 2형을 기반으로 만든 유전자 운반체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AAV2는 배달 차량이고, 그 안에 실린 OSK가 세포에 전달하려는 정보인 셈입니다. 다만 AAV도 체내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무조건 안전한 운반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OSK는 다음 세 가지 전사인자의 앞글자를 딴 이름입니다.

    • OCT4
    • SOX2
    • KLF4

    전사인자는 세포 안에서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꺼질지 조절하는 단백질입니다. ER-100은 이 세 가지 인자의 발현을 조절해 손상되거나 노화한 세포의 유전자 발현 상태를 보다 젊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치료제입니다.

    다만 이것은 현재 개발사가 제시한 치료 원리이자 연구 목표입니다. 사람의 세포가 실제로 젊어지고 시신경 기능이 회복되는지는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야마나카 인자와 ER-100은 어떤 관계일까?

    이 연구의 출발점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입니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미 분화가 끝난 성체세포에 네 가지 전사인자를 작용시키면, 여러 종류의 세포로 다시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때 사용된 네 가지 인자가 바로 다음의 OSKM입니다.

    • OCT4
    • SOX2
    • KLF4
    • MYC

    이 발견으로 야마나카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ER-100이 야마나카 교수가 직접 개발한 치료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연구에서 출발한 기술을 다른 연구진과 기업이 부분 재프로그래밍이라는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야마나카 교수의 초기 연구처럼 세포를 줄기세포 상태까지 완전히 되돌리는 것을 ‘완전 역분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속에서 세포를 완전히 초기화하면 원래 맡고 있던 역할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증식이나 종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됩니다.

    ER-100은 MYC를 제외한 OSK 세 가지 인자만 사용합니다. MYC는 세포 증식을 강하게 촉진하고 종양 발생과도 관련된 유전자이기 때문에 제외된 것으로 설명됩니다.

    완전 역분화와 부분 재프로그래밍의 차이

    완전 역분화가 스마트폰을 공장 초기화하는 것이라면, 부분 재프로그래밍은 사진과 연락처는 그대로 둔 채 오래된 설정 일부를 정돈하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시신경 세포를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신경 세포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노화나 손상으로 흐트러진 유전자 발현 상태 일부를 조정하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흔히 ‘후성유전학적 정보를 되돌린다’고 표현됩니다.

    DNA 염기서열을 책의 본문이라고 한다면, 후성유전학은 어느 부분을 읽고 어느 부분을 덮어둘지 알려주는 책갈피나 메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 조절 상태가 달라지는데, 연구진은 그중 일부를 보다 젊은 상태에 가깝게 되돌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화가 후성유전학적 변화 하나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DNA 손상,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만성 염증, 세포 노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관여합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적 상태를 일부 바꿨다고 해서 사람의 노화 전체가 되돌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동물실험에서는 무엇이 관찰됐을까?

    ER-100의 바탕이 된 대표적인 연구는 2020년 국제학술지 《Nature》에 발표됐습니다.

    연구진은 시신경이 손상된 쥐와 나이가 들면서 시각 기능이 떨어진 쥐의 눈에 AAV2를 이용해 OSK를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망막신경절세포의 생존과 손상된 축삭의 재생이 관찰됐고, 일부 시각 기능 지표도 개선됐습니다. DNA 메틸화 양상 역시 더 젊은 상태와 가까운 방향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Nature 원 논문

    이 결과는 손상된 신경세포도 특정 조건에서는 기능 회복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사람이 아닌 쥐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쥐의 눈과 사람의 눈은 크기와 구조가 다르고, 면역체계와 수명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에게서 나타난 신경 재생과 기능 개선이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쥐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됐다”거나 “노화를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표현하면 연구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셈이 됩니다.

    왜 첫 임상시험 부위가 눈일까?

    부분 재프로그래밍 연구가 피부나 전신이 아닌 눈에서 먼저 임상시험에 들어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눈은 치료제를 필요한 부위에 국소적으로 투여할 수 있습니다. 전신으로 약물을 보내는 것보다 적은 양을 사용하면서도 목표 세포에 접근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둘째, 치료 전후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검사법이 잘 마련돼 있습니다. 시력검사와 시야검사, 안구단층촬영 등을 통해 눈의 구조와 기능을 비교적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셋째, 망막과 시신경은 중추신경계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눈에서 신경세포의 보호나 기능 회복 가능성이 확인된다면 다른 신경계 질환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습니다.

    눈은 면역반응이 비교적 제한적으로 일어나는 부위로 알려져 있지만, 완전히 안전한 공간은 아닙니다. 안구 내 염증이나 AAV 전달체에 대한 면역반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임상시험에서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눈에서 효과가 확인된다고 해도 이를 곧바로 피부, 근육, 뇌 또는 전신 회춘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전신에 적용하려면 전달 방법과 적정 용량, 장기별 반응과 종양 위험 등을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야 합니다.

    ER-100 임상시험은 현재 어디까지 왔을까?

    Life Biosciences는 2026년 1월 28일, 미국 FDA가 ER-100의 임상시험계획을 허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공개된 임상시험 등록번호는 NCT07290244입니다. 개방각녹내장과 비동맥염성 앞허혈시신경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 면역반응 등을 평가하는 임상 1상입니다. 시각 기능 변화도 추가 평가항목으로 포함됩니다. ClinicalTrials.gov 임상정보

    이어 회사는 2026년 6월 9일 첫 번째 참가자에게 ER-100을 투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Life Biosciences 첫 투여 발표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FDA가 임상시험 진행을 허용했다는 것은 치료 효과를 인정하거나 판매를 승인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IND 허용: 사람에게 시험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 진행을 허용한 단계
    • 치료제 허가: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치료제로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한 단계

    ER-100은 현재 첫 번째 단계에 있습니다.

    FDA가 확인된 안전성 자료와 시험계획을 검토해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도록 허용했지만, 치료 효과와 장기 안전성이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사람의 세포가 젊어진 것일까?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동물실험에서 시신경 재생과 시각 기능 개선 가능성이 관찰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에게 ER-100을 투여한 뒤 시신경 세포가 젊어졌다거나 시력이 회복됐다는 임상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임상 1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효과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항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 투여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가?
    • 어느 정도의 용량까지 견딜 수 있는가?
    • 눈이나 전신에서 면역반응이 발생하는가?
    • 예상하지 못한 세포 변화가 나타나는가?
    • 시각 기능에 어떤 변화가 관찰되는가?

    첫 번째 환자에게 약을 투여했다는 사실은 치료 성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 사람에게 사용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남아 있는 안전성 문제

    유전자치료는 한 번 투여하면 일반 약처럼 복용을 중단하기 어렵습니다. 세포에 전달된 유전정보가 장기간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추적관찰이 필요합니다.

    먼저 눈 속에 직접 주사하는 과정 자체에서 감염, 출혈, 염증, 안압 변화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AAV2 전달체에 대한 면역반응도 살펴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기존 항체나 면역반응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치료 효과와 부작용 양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OSK 발현이 예상과 다르게 조절될 가능성도 확인해야 합니다. 세포의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비정상적인 증식이 나타나는지, 장기적으로 종양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지도 중요한 관찰 대상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ER-100 임상에서 실제로 발생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전자치료와 부분 재프로그래밍 연구에서 장기간 확인해야 할 잠재적 위험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일반인이 받을 수 있을까?

    현재 ER-100은 정해진 조건에 맞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임상시험용 후보물질입니다.

    일반 피부과나 안과에서 돈을 내고 받을 수 있는 치료가 아니며, 건강한 사람이 피로회복이나 항노화를 목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술도 아닙니다.

    아직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가격도 없습니다. 다른 유전자치료제가 고가라는 이유만으로 ER-100의 미래 가격을 수억 원대로 추정하는 것도 근거가 부족합니다.

    만약 현재 어떤 병원이나 업체에서 ER-100과 같은 원리라며 ‘역노화 주사’나 ‘세포 회춘 시술’을 판매한다면, 이번 임상시험과 같은 치료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ER-100 역노화 연구, 기대해도 되는 범위

    ER-100은 손상되면 자연적으로 재생되기 어려운 시신경 세포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할 만한 연구입니다.

    동물실험 단계에 머물던 부분 재프로그래밍 기술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임상시험에 진입했다는 것과 효과적인 치료제가 완성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신약 후보물질 중에는 초기 임상에서 기대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안전성 문제로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재 확인된 사실은 ER-100이 첫 참가자 투여를 시작했고, 사람에게서 안전성과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까지입니다.

    사람의 시신경 기능이 실제로 회복되는지,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장기적으로 안전한지는 앞으로 발표될 임상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대할 만한 연구라는 것과 지금 돈을 내고 받을 만한 치료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ER-100은 줄기세포 주사인가요?

    아닙니다.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치료가 아니라 AAV2 전달체를 이용해 OSK 전사인자에 관한 유전정보를 눈의 세포에 전달하는 유전자치료입니다.

    전신을 젊게 만드는 역노화 치료인가요?

    아닙니다. 개방각녹내장과 NAION으로 손상된 시신경 세포의 기능 회복 가능성을 연구하는 국소 치료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전신 회춘 효과를 시험하는 연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효과가 확인됐나요?

    아직 공개된 효과 결과가 없습니다. 현재는 임상 1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을 우선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인가요?

    FDA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도록 허용한 후보물질입니다. 판매 가능한 치료제로 최종 허가된 것은 아닙니다.

    일반인이 받을 수 있고 가격도 정해졌나요?

    일반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상용 치료가 아니며 공식 가격도 없습니다. 임상시험의 조건에 맞는 환자만 연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이 글은 공개된 논문과 공식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건강정보이며, 개인의 질환을 진단하거나 치료 방법을 권유하기 위한 내용이 아닙니다.

  • 뇌세포는 어떻게 서로를 찾아 연결될까? 성장원뿔과 시냅스 이야기

    뇌세포는 어떻게 서로를 찾아 연결될까? 성장원뿔과 시냅스 이야기

    뉴런 연결 과정은 눈으로 직접 보기 어려운 뇌 속 현상입니다. 얼마 전 SNS에서 신경세포가 작은 손을 뻗어 이웃 세포를 찾아가는 듯한 현미경 영상을 보았습니다.

    여러 개의 가느다란 돌기가 허공을 더듬으며 상대를 향해 뻗어 나가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정말 뇌세포가 서로를 찾아가 실제로 연결되는 걸까요?

    먼저 한 가지는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의 정확한 출처와 실험 조건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어떤 종류의 세포인지, 어떤 환경에서 촬영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실제 사람의 뇌 안을 촬영한 장면이나 성인이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신경세포의 돌기가 주변을 탐색하며 자라나는 현상 자체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성장원뿔(growth cone)​입니다.

    오늘은 뉴런이 어떻게 길을 찾고, 다른 세포와 만나 시냅스를 형성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뉴런 연결 과정에서 뉴런 전체가 움직일까?

    뇌의 대표적인 신경세포인 뉴런(neuron)​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포체(soma)​는 핵이 들어 있는 뉴런의 몸통입니다. 세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고 에너지를 관리합니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수상돌기(dendrite)​는 다른 뉴런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안테나 역할을 합니다.

    길게 뻗은 축삭(axon)​은 뉴런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를 다른 신경세포나 근육세포로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뉴런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축삭을 가지지만, 축삭 끝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습니다.

    뇌가 발달하는 동안에는 새로 만들어진 뉴런의 세포체가 자신이 자리 잡을 위치로 이동하는 신경세포 이동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리를 잡은 뉴런이 다른 세포와 연결될 때는 대개 뉴런 전체가 상대를 향해 기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나는 축삭 끝부분이 주변을 탐색하면서 연결될 곳을 찾아갑니다.

    따라서 현미경 영상에서 보이는 가느다란 구조는 뉴런의 몸통 전체가 팔을 뻗는 모습이라기보다, 축삭이나 다른 신경돌기가 자라며 주변을 탐색하는 모습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작은 탐험가, 성장원뿔

    뉴런 연결 과정에서 축삭 끝의 성장원뿔과 필로포디아를 확대한 모습

    자라나는 축삭의 맨 끝에는 성장원뿔이라는 역동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성장원뿔은 주변 환경을 살피면서 축삭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합니다. 축삭의 맨 앞에서 길을 탐색하는 작은 탐험가이자 내비게이션인 셈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성장원뿔은 손바닥을 펼친 모습이나 부채꼴과 비슷합니다.

    가장자리에는 손가락처럼 길고 가느다란 필로포디아(filopodia)​가 뻗어 있습니다. 필로포디아는 주변의 신호를 감지하는 더듬이처럼 움직입니다.

    필로포디아 사이에는 얇은 막 모양의 라멜리포디아(lamellipodia)​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구조도 성장원뿔이 주변 표면과 상호작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관여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포 내부의 뼈대입니다.

    가장자리에는 액틴(actin)​이라는 단백질이 풍부합니다. 액틴이 결합하고 해체되는 과정에 따라 돌기가 앞으로 뻗거나 움츠러들고, 성장원뿔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중심부로는 미세소관(microtubule)​이 이어집니다. 미세소관은 자라나는 축삭을 지지하는 동시에 필요한 물질이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성장원뿔까지 재료를 운반하는 키네신

    성장원뿔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새로운 세포막과 단백질을 비롯한 여러 재료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지난 글에서 소개한 키네신(kinesin)​입니다.

    키네신 계열의 운동 단백질은 미세소관을 따라 이동하며 단백질, 소포, 세포 소기관 등 다양한 화물을 필요한 곳으로 운반합니다. 일부 키네신은 축삭과 성장원뿔의 발달에 필요한 물질을 운반하는 데에도 관여합니다.

    키네신을 세포 안에서 화물을 옮기는 배달원이라고 한다면, 성장원뿔은 세포의 가장 앞에서 길을 찾는 탐험가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세포 안에서 필요한 물질을 운반하는 작은 배달원이 궁금하다면, 신기한 몸속 과학 1편 ‘세포 안을 걷는 배달원, 키네신은 무엇을 운반할까?’​도 함께 읽어보세요.


    성장원뿔은 어떻게 길을 찾을까?

    성장원뿔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주변 세포와 조직에서 보내는 여러 신호를 읽으며 방향을 계속 조정합니다.

    이 신호는 멀리 퍼져 농도 차이로 방향을 알려주기도 하고, 성장원뿔이 특정 세포나 표면에 직접 닿았을 때 작용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축삭 유도 물질인 네트린(netrin)​은 성장원뿔이 가진 수용체와 주변 환경에 따라 축삭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낼 수 있습니다.

    슬릿(slit), 세마포린(semaphorin), 에프린(ephrin) 같은 물질도 성장원뿔이 특정 경계를 넘지 않게 하거나 방향을 바꾸도록 안내합니다.

    이를 도로에 비유하면 하나의 신호가 목적지까지 모두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원뿔이 여러 표지판과 도로 경계를 함께 읽으며 길을 찾아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성장원뿔 표면에는 이러한 신호를 감지하는 수용체가 있습니다. 한쪽에서 유인 신호가 감지되면 그 방향의 세포골격이 재배치되면서 성장원뿔이 방향을 틀 수 있습니다. 반대로 회피 신호가 감지된 쪽에서는 돌기가 움츠러들거나 진행 방향이 바뀔 수 있습니다.

    작은 성장원뿔은 이렇게 주변을 계속 탐색하며 조금씩 목적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바로 시냅스가 될까?

    성장원뿔은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가지를 만들며 연결할 대상을 탐색합니다.

    하지만 다른 세포와 접촉했다고 해서 즉시 완성된 연결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포 사이의 여러 분자 신호가 서로를 인식하고, 신호를 보내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에 필요한 단백질이 모여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신호를 보내는 쪽에는 신경전달물질을 담은 작은 소포들이 모이고, 반대쪽에는 그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자리 잡습니다.

    이렇게 뉴런과 뉴런 또는 뉴런과 다른 표적 세포 사이에 만들어진 정보 전달 부위를 시냅스(synapse)​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시냅스가 만들어져도 두 뉴런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화학적 시냅스에서는 신호를 보내는 세포와 받는 세포가 매우 좁은 시냅스 간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합니다. 신호를 보내는 뉴런이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면, 이 물질이 간극을 건너 반대편 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면서 정보가 전달됩니다.

    뉴런 연결 과정에서 시냅스 간극을 건너 전달되는 신경전달물질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세포의 경계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모든 연결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뇌가 발달하는 동안에는 많은 신경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처음 형성된 연결이 모두 성숙한 회로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신경 활동과 감각 경험, 세포 사이의 분자 신호, 주변 신경교세포의 작용 등이 함께 관여해 일부 연결은 강화되고, 일부는 약해지거나 제거됩니다.

    이처럼 발달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적합한 연결이 정리되는 현상을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라고 합니다.

    이를 ‘자주 쓰는 길은 무조건 남고, 사용하지 않는 길은 모두 사라진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과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다만 자주 함께 활성화되는 일부 연결은 신호 전달 효율이 높아질 수 있고, 발달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덜 활성화되거나 적합하지 않은 일부 연결은 약해지거나 정리될 수 있습니다.

    뇌의 신경망은 연결을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연결을 강화하고 전체 회로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

    여기까지 살펴본 성장원뿔과 축삭 유도 과정은 주로 신경계가 만들어지는 발달 시기에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새로운 운동이나 공부를 시작할 때도 성장원뿔이 긴 축삭을 새로 뻗어 길을 만드는 것일까요?

    발달기의 축삭 성장과 성인의 학습을 완전히 같은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성인의 뇌에서도 구조와 기능의 변화는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나 발달기처럼 신경망의 기본 배선을 처음부터 만드는 과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인의 학습과 기억에는 이미 존재하는 시냅스의 신호 전달 효율이 달라지고, 일부 연결의 구조와 활동 방식이 변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중요하게 관여합니다.

    수상돌기에 돋아 있는 작은 돌기인 수상돌기가시(dendritic spine)​의 모양과 크기, 안정성이 경험과 신경 활동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도로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발달기의 축삭 유도가 새로운 지역에 도로망을 놓는 작업이라면, 성인의 학습은 이미 존재하는 도로의 통행 방식을 조정하고 일부 길을 보강하는 작업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두 현상을 모두 ‘뇌에서 진행되는 공사’라고 비유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도로망을 처음 만드는 것과 기존 도로를 정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작업입니다.

    따라서 SNS의 현미경 영상을 성인이 습관을 만들 때 뇌 안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모습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운 것을 반복해서 배우는 동안 기존 신경회로의 활동 방식과 시냅스 효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은 가능합니다.


    뇌의 연결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뉴런의 연결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장원뿔은 주변의 신호를 탐색하며 길을 찾고, 적절한 표적에 도착하면 다른 세포와 시냅스를 형성합니다. 만들어진 연결 가운데 일부는 강화되고, 일부는 약해지거나 정리되면서 정교한 신경망이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을 알고 나면 새로운 공부나 운동을 시작했을 때 느껴지는 초반의 어색함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어색함 자체를 ‘새 축삭이 자라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동작과 정보를 능숙하게 처리하려면 학습과 반복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뇌 회로의 작동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성장원뿔이 수많은 신호를 살피며 조금씩 길을 찾아가듯, 우리도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일을 조금씩 익혀갑니다.


    참고자료

    1. Lowery LA, Van Vactor D. The trip of the tip: understanding the growth cone machinery. Nature Reviews Molecular Cell Biology. 2009;10:332–343. https://doi.org/10.1038/nrm2679
    2. Gomez TM, Letourneau PC. Actin dynamics in growth cone motility and navigation. Journal of Neurochemistry. 2014;129(2):221–234. https://doi.org/10.1111/jnc.12506
    3. Tessier-Lavigne M, Goodman CS. The molecular biology of axon guidance. Science. 1996;274(5290):1123–1133. https://doi.org/10.1126/science.274.5290.1123
    4. Kolodkin AL, Tessier-Lavigne M. Mechanisms and molecules of neuronal wiring: a primer. Cold Spring Harbor Perspectives in Biology. 2011;3(6). https://doi.org/10.1101/cshperspect.a001727
    5. Katz LC, Shatz CJ. Synaptic activity and the construction of cortical circuits. Science. 1996;274(5290):1133–1138. https://doi.org/10.1126/science.274.5290.1133
    6. Holtmaat A, Svoboda K. Experience-dependent structural synaptic plasticity in the mammalian brai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09;10(9):647–658. https://doi.org/10.1038/nrn2699
    7. Hirokawa N, Noda Y, Tanaka Y, Niwa S. Kinesin superfamily motor proteins and intracellular transport. Nature Reviews Molecular Cell Biology. 2009;10(10):682–696. https://doi.org/10.1038/nrm2774
  • 세포 안을 걷는 배달원, 키네신은 무엇을 운반할까?

    세포 안을 걷는 배달원, 키네신은 무엇을 운반할까?

    며칠 전 SNS에서 아주 신기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가늘고 긴 레일 위를 작은 존재 하나가 두 다리를 번갈아 내밀며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처음에는 누군가 AI로 만든 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읽어보니 이 작은 존재는 우리 몸의 세포 안에서 일하는 단백질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바로 키네신(kinesin)​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본 영상이 실제 현미경으로 촬영한 원본인지,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만든 과학 애니메이션인지는 원본을 확인하지 않아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키네신이 세포 안의 길을 따라 움직이며 화물을 운반한다는 사실은 실제 연구로 확인된 내용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작은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무엇을 운반하고, 어떻게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움직이는 것일까요?

    키네신이란 무엇일까?

    키네신은 세포 안에서 여러 화물을 운반하는 모터 단백질입니다.

    모터 단백질이라는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에너지를 사용해 실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단백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세포 안에는 미세소관(microtubule)​이라는 가느다란 단백질 구조물이 뻗어 있습니다. 미세소관은 세포의 모양을 지지하는 뼈대 역할도 하지만, 세포 내부의 물질이 이동하는 길로도 이용됩니다.

    키네신은 이 미세소관 위에 결합해 한쪽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흔히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는 kinesin-1에는 미세소관을 붙잡는 두 개의 머리 부분이 있습니다. 이 두 머리가 번갈아 앞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 두 다리로 걷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키네신을 설명할 때 ‘세포 안을 걷는 단백질’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됩니다.

    키네신은 정말 두 다리로 걸을까?

    미세소관 위에서 두 머리를 번갈아 움직이는 kinesin-1 모터 단백질

    키네신이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발을 내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머리가 번갈아 앞으로 이동하는 방식은 실제 실험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이를 과학자들은 핸드 오버 핸드(hand-over-hand)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두 손으로 줄을 번갈아 잡으며 앞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가장 많이 연구된 kinesin-1은 미세소관을 따라 약 8나노미터씩 앞으로 이동합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이므로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거리입니다.

    키네신이 움직이려면 에너지도 필요합니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세포의 에너지 화폐라고 불리는 ATP입니다. kinesin-1은 일반적으로 한 번 이동할 때 ATP 한 분자를 분해해 얻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다만 ‘키네신’은 하나의 단백질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여러 종류의 키네신 단백질이 있으며, 각각의 구조와 역할, 이동 방향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두 다리로 걷는 모습과 약 8나노미터라는 보폭은 주로 kinesin-1을 중심으로 한 설명입니다.

    세포 안에도 배송 시스템이 있다

    키네신의 역할은 세포 안에 작은 물류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미세소관은 세포 안의 도로
    • 키네신은 도로 위를 이동하는 배송 기사
    • ATP는 이동에 필요한 연료
    • 소포와 세포기관은 목적지까지 옮겨야 하는 배송 화물

    하지만 키네신이 목적지를 스스로 판단하거나 길을 외워서 찾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미세소관에는 플러스(+) 말단과 마이너스(-) 말단이라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키네신은 이 가운데 플러스 말단을 향해 이동합니다.

    세포 안에는 키네신과 반대 방향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다이닌(dynein)​이라는 모터 단백질도 있습니다. 키네신과 다이닌을 비롯한 여러 단백질이 함께 작동하면서 세포 안의 양방향 운송이 조절됩니다.

    키네신은 무엇을 운반할까?

    키네신이 세포 안에서 옮기는 화물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여러 물질을 담고 있는 세포 내 소포
    • 세포의 에너지 생산에 관여하는 미토콘드리아
    • RNA와 단백질로 이루어진 복합체
    • 세포막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물질
    • 신경세포의 말단으로 보내야 하는 여러 구성 성분

    키네신이 어떤 화물을 옮기는지는 키네신의 종류와 세포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화물과 키네신 사이를 연결하는 단백질과 운반 과정을 조절하는 여러 신호도 관여합니다.

    혈액이 몸 전체의 물류망이라면, 키네신은 개별 세포 안에서 일하는 배송 직원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먹은 단백질을 배달하는 것일까?

    키네신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먹은 단백질도 키네신이 몸 곳곳으로 배달해주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한 단백질은 소화 과정에서 주로 아미노산과 다이펩타이드·트라이펩타이드 같은 작은 조각으로 분해됩니다. 이들은 장에서 흡수된 뒤 우리 몸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됩니다. 『단백질과 펩타이드의 차이가 궁금하다면, 「저분자 콜라겐·펩타이드·트리펩타이드의 차이」도 함께 읽어보세요.』

    각 세포는 공급받은 아미노산을 이용해 필요한 단백질을 새롭게 만듭니다. 키네신 역시 세포가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합성하는 단백질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키네신이 세포 안에서 소포와 세포기관 같은 화물을 운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먹은 단백질 덩어리가 그대로 키네신이 되거나, 키네신이 음식 속 단백질을 등에 지고 혈관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 속 단백질의 소화와 흡수는 몸 전체의 영양 공급 과정이고, 키네신의 운반은 그보다 훨씬 작은 개별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신경세포에서 키네신이 중요한 이유

    키네신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곳 가운데 하나가 신경세포입니다.

    신경세포에는 축삭(axon)이라는 길고 가느다란 부분이 있습니다. 축삭은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통로로, 사람의 경우 일부는 1미터가 넘는 거리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경세포의 축삭 안에서 미토콘드리아와 소포를 운반하는 키네신

    그런데 신경세포에 필요한 여러 단백질과 물질은 주로 세포체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을 멀리 떨어진 축삭 말단까지 보내려면 세포 안에서도 장거리 운송이 필요합니다.

    키네신은 미세소관을 따라 이동하면서 미토콘드리아와 여러 소포, 단백질 복합체 등을 축삭 말단 방향으로 운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포 내부의 운송 이상은 여러 신경계 질환 연구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키네신 한 종류의 이상이 특정 질환을 곧바로 일으킨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질환의 발생에는 다양한 유전자와 세포 기능, 환경적 요인이 함께 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NS에서 본 키네신 영상은 진짜일까?

    키네신이 미세소관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자체는 실제 실험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2004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키네신의 한쪽 머리에 형광 표지를 붙여 움직임을 추적했고, 두 머리가 번갈아 앞으로 나아가는 핸드 오버 핸드 방식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2023년에는 MINFLUX라는 초고해상도 현미경 기술을 이용한 두 편의 연구가 나란히 발표됐습니다.

    Wolff 연구팀은 시험관에서 재구성한 미세소관 위를 이동하는 kinesin-1의 움직임을 매우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함께 발표된 Deguchi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kinesin-1이 이동하는 모습을 나노미터 수준으로 추적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이 관찰한 것은 형광물질로 표시한 키네신의 위치 변화입니다. 사람처럼 생긴 몸통과 두 다리가 현미경 화면에 그대로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명한 키네신 영상은 실제 단백질의 구조와 실험으로 확인된 움직임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한 과학 애니메이션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키네신이 걷는다는 것은 모두 가짜다”라는 말도 맞지 않고, “SNS 영상에 보이는 모습이 현미경으로 그대로 촬영된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 과학적 관찰과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키네신 영양제도 있을까?

    키네신이 세포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니, 이를 보충하거나 더 활발하게 만드는 영양제가 있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키네신은 음식이나 영양제로 먹어서 직접 채워 넣는 성분이 아닙니다. 세포가 유전정보에 따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단백질입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가운데 ‘키네신 활성화 영양제’로 공식 인정된 제품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ATP가 키네신의 움직임에 사용된다고 해서 ATP 보충제를 먹으면 키네신이 더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세포 안의 ATP 생성과 사용은 매우 복잡하게 조절되며, 먹는 보충제를 키네신의 운동 능력과 곧바로 연결할 만한 근거도 부족합니다.

    키네신을 표적으로 삼는 치료제 연구는 항암제와 일부 희귀질환 치료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영양제와는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제품 추천이 없는 이야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유지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역시 건강정보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포 안에서는 지금도 배송이 계속된다

    우리는 걷거나 움직일 때만 몸속에서 운동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세포 안에서는 키네신 같은 모터 단백질이 미세소관을 따라 이동하며 필요한 화물을 나르고 있습니다.

    물론 키네신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나노미터 크기의 단백질이 에너지를 사용하고,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며, 세포가 필요한 물질을 필요한 장소로 옮긴다는 사실은 충분히 놀랍습니다.

    우리 몸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영양제나 질병 이야기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 안의 작은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얼마나 정교한 체계로 유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키네신과 주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세포 안의 양방향 물류를 완성하는 또 다른 모터 단백질, 다이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 Yildiz A, Tomishige M, Vale RD, Selvin PR. Kinesin walks hand-over-hand. Science. 2004;303(5658):676–678.
    2. Hirokawa N, Noda Y. Intracellular transport and kinesin superfamily proteins, KIFs. Physiological Reviews. 2008;88(3):1089–1118.
    3. Vale RD. The molecular motor toolbox for intracellular transport. Cell. 2003;112(4):467–480.
    4. Wolff JO, et al. MINFLUX dissects the unimpeded walking of kinesin-1. Science. 2023;379(6636):1004–1010.
    5. Deguchi T, et al. Direct observation of motor protein stepping in living cells using MINFLUX. Science. 2023;379(6636):1010–1015.